2025년 9월 개봉한 영화 <어쩔 수가 없다>는 대한민국의 수많은 ‘가장’들이 공감할 수밖에 없는 이야기를 그린 작품입니다. 25년 경력의 제지 전문가 ‘만수’가 구조조정 통보를 받으면서 시작되는 이 이야기는, 일터와 가정 사이에서 압박을 받는 중년 남성의 현실, 그리고 그 속에서 버텨내야 하는 한 인간의 ‘잔인한 일상’을 블랙코미디의 시선으로 조명합니다. ‘내가 아니라도 될 수 있는 자리’, ‘내가 아니면 안 되는 책임’ 사이에서 현실적으로 무너져가는 한 가장의 이야기를 아래 세 가지 키워드로 분석합니다.
중년위기 – 나는 이제 어디로 가야 하나
주인공 만수는 25년 동안 직장 하나만을 바라보고 살아온 인물입니다. 그에게 회사는 곧 인생이었고, 일은 존재의 증명이었습니다. 하지만 예고도 없이 내려진 구조조정 통보는 그런 만수의 인생을 송두리째 흔들어 놓습니다.
이 영화는 단순히 직장을 잃은 남자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가치의 붕괴’, ‘정체성의 상실’, ‘존재 이유에 대한 혼란’이라는 중년들이 흔히 겪는 심리적 위기를 리얼하게 그려냅니다.
특히 아무도 만수를 책임지지 않는 현실 앞에서, 그는 “어쩔 수 없습니다”라는 말을 몇 번이고 반복하며 자신을 체념과 순응 속으로 몰아넣습니다.
<어쩔 수가 없다>는 중년 남성의 위기가 단순한 경제 문제가 아닌, 존재의 근간을 흔드는 일임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그것이 얼마나 무겁고 고독한 싸움인지를 잔잔하면서도 날카롭게 전달합니다.
직장현실 – 성실함이 무기일 수 없는 시대
만수는 누구보다 성실하고 무난한 직장인입니다. 하지만 지금의 회사는 성과와 인지도, 젊음과 경쟁력만을 추구합니다. 그의 진심과 노고는 어느새 “감사하지만 필요 없는 것”으로 취급받습니다.
영화 속 상사는 기계처럼 통보하고, 후배는 그의 자리를 탐내고, 심지어 가장 믿었던 동료도 결국 ‘회사의 논리’ 앞에선 등을 돌리는 현실은 수많은 직장인들의 공감을 자아냅니다.
<어쩔 수가 없다>는 한국 사회의 직장 문화를 사실적으로 조명하면서, 회사가 사람을 쓰는 구조가 얼마나 잔인할 수 있는지 그리고 그 안에서 한 인간이 얼마나 무력하게 버텨야 하는지를 보여줍니다.
“당신의 자리는 없습니다”라는 말 한마디가 한 사람의 자존감을 무너뜨리는 현실, 이 영화는 그것을 결코 과장 없이, 담담한 시선으로 직시합니다.
가족책임 – 가장이라는 직책의 무게
퇴직 위기 속에서도 만수는 가족에게 현실을 숨깁니다. 아내에게 말하지 못하고, 아이에게 짐이 되지 않으려 하고, 부모님 앞에서는 항상 괜찮은 척을 합니다.
가족은 분명 가장 가까운 사람들입니다. 하지만 책임이 된 순간, 그들은 때론 가장 멀게 느껴지는 존재로 다가옵니다. 만수는 가족을 위해 자신을 지우고, 가정을 지키기 위해 거짓말을 반복하며 스스로를 몰아갑니다.
이 영화는 그런 ‘가족 내 희생의 역학 구조’를 사실적으로 조명합니다. 한 사람이 짊어진 생계, 감정, 기대, 불안이 얼마나 버거운지를 보여주며 관객들로 하여금 “나는 누군가에게 이렇게 보이고 있는가”를 되돌아보게 합니다.
결국 영화는 말합니다. “가장이기 때문에 포기해야 하는 게 아니라, 가장이기 때문에 지켜야 할 것도 있다”고요.
<어쩔 수가 없다>는 단순히 퇴직을 앞둔 중년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대한민국 사회 속 ‘아버지’와 ‘회사인간’의 초상화이자, 그들이 짊어진 감정과 책임을 조명하는 현대적 휴먼 드라마입니다. 웃기지만 웃을 수 없고, 무겁지만 무너지지 않는 이 영화는 가족, 사회, 자기 자신을 위해 오늘도 버티는 수많은 ‘만수들’의 얼굴을 떠올리게 합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어쩔 수 없이 살아가는 누군가에게 꼭 닿을 수 있는 작품입니다.